세계에서 위스키 5대 산지를 꼽으라면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 그리고 일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선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위스키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 위스키 역사의 디딤돌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 다케쓰루 마사타카
다케쓰루 마사타카는 1차 세계 대전 직후 스코틀랜드로 유학을 떠나 현지 증류소에서 기술 전수를 받아 1920년 11월, 26살의 나이로 2권의 노트를 손에 꼭 쥔 채로 스코틀랜드에서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스코틀랜드 현지에서 증류소 공장장까지 역임할 정도로 위스키 제조 기술을 배우는데 매진한 그는 일본으로 돌아와 현재 유명한 야마자키, 히비키 등으로 유명한 산토리에서 일본 위스키를 탄생시켰으며, 퇴사 후 자신의 회사인 닛카 위스키를 창업하게 됩니다. 현재 산토리와 닛카가 일본 위스키 시장의 99%를 점유하고 있으며 다케쓰루 마사타카는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습니다.
→ 일본 산토리 위스키의 역사에 대해서 유튜브 영상 보기!
일본 위스키의 역사, 기술의 완성
산토리 위스키(SUNTORY Whisky)
요즘 MZ세대 즉, 젊은 세대가 위스키에 열광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하이볼’ 입니다. ‘하이볼’의 대명사 ‘산토리 가쿠빈’은 술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무조건 들어본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케쓰루 마사타카(竹鶴政孝 : 1894~1979)와 ‘산토리’의 인연은 1923년부터 시작되는데요,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위스키를 생산하려고 마음먹은 ‘산토리’의 창업자 토리이 신지로(鳥井信治郞 : 1879~1962)는 스코틀랜드 유학 생활을 다녀온 다케쓰루를 10년간 채용하여 ‘야마자키’ 증류소를 세워 위스키 제조를 시작하게 됩니다.
다케쓰루는 스코틀랜드에서 배운 경험을 토대로 최대한 스코틀랜드와 풍토가 비슷한 오사카 근교 5개 후보지 중 오사카와 가까운 ‘야마자키’를 설립지로 결정하게 되고 다케쓰루가 직접 증류소에 관련한 모든 것에 참여하여 설계를 같이 진행하였습니다. 그 곳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야마자키 증류소’ 입니다. 다케쓰루의 경험과 현명한 판단과 더불어 후배들의 피땀 흘린 노력 덕분에 그 역사와 전통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 ‘산토리 가쿠빙’과 ‘가쿠하이’에 대한 이야기 ※
현재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산토리 가쿠빈’은 몰트 위스키와 옥수수, 호밀, 밀 등을 사용한 그레인 위스키를 섞은 블렌디드 위스키 입니다. ‘산토리 가쿠빈’은 1937년 출시하여 전용 유리에 특유의 거북 등껍질 무늬가 들어간 각진 병이라는 특징을 표현하는 의미로 ‘가쿠빙’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일본의 이자카야에 방문하면 ‘가쿠하이’ 라고 불리는 음료를 볼 수 있는데요, ‘가쿠하이’란 ‘산토리 가쿠 하이볼’ 즉, ‘산토리 가쿠빈’을 사용하여 만든 하이볼을 뜻한다고 합니다.
닛카 위스키, 일본 위스키의 완성
다케쓰루는 산토리에서 약속한 10년을 근무하고 산토리를 떠나게 됩니다. 토이리 신지로의 곁을 떠난 다케쓰루는 기존에 생각하고 있던 증류소 부지인 훗카이도 요이치(余市)에 증류소를 세웠고 1940년 닛카(日果) 위스키라는 회사를 창립하게 됩니다. 정통 위스키를 꾸준히 추구하다 경영이 어려워진 닛카는 세계의 여러 증류소와 마찬가지로 결국 1954년 아사히 맥주의 산하로 흡수되었습니다. 하지만 닛카 위스키는 여전히 전통 위스키 애호가들에게 사랑 받을 만큼 훌륭한 품질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마무리
일본이 현재 위스키 강국으로 거듭난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다케쓰루 마사타카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자신이 증류 기술을 배워오겠다는 일념 하나로 먼 타국 스코틀랜드부터 위스키 제조 기술을 배워왔고, 자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일본 내 위스키 문화의 발전에 매우 크게 기여를 하였습니다. 특히 여전히 사랑 받고 있는 산토리와 닛카의 선의의 경쟁은 일본 위스키 기술력 향상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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